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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보신탕.

이맘때의 훅훅볶는 듯한 더위에도 아랑곳 없이

소독차를 쫓아다니다 또랑에서 멱을 감고

집에 오던 그런때가 내게도 있었다.


갑자기 어려워진 가세를 등에 업고 너무 일찍 얻은 첫 손주를 품에 안으며

시골로 떠밀려들어온 할머니는 

같은 동네에 사는 농사만 짓던 동년배에 비해 너무 하얗고 젊어보였고

시내 라사집에서 맞춘 옷은 동네 사람들이 입는 몸빼바지에 비해 너무 화려 했으며

심지어 목욕마저 버스타고 삼사십분씩 걸려 전에 다니던 시내로 다니셧으니

동네 사람들에겐 그저 눈에 가시 같은 사람 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목욕을 다니며 전에 살던 동네를 왔다 갔다 했을할머니 마음에도 가시가 박혔으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할머니의 심정을 지금에서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때만 해도 어린 내겐 먹을것이 참 귀했었다.

요즘처럼 삼겹살을 밖에서 매일 같이 사먹는건 꿈도 못꿧으며 또한 그 시골에 고깃집이 있을리도 만무한 일이고...

그래도 가끔 부르스타에 후라이팬을 올려 구운 고기를 같이먹었던거 같다.

그 나이의 내가 뭘알까.. 그저 주는대로 먹는거지..

또한 잔병치례가 잦던 아픈 내가 입맛이 없다 하면 닭고기나 소고기를 저며 마당에서 석쇠를 내와 구워 내게 먹이시던 할머니의 사랑을 내가 다 어찌 갚을까... 아니 갚지 못할것 같다.


그러던 요즘같이 더운여느날 내게 "너희 엄마는 어디에 있냐?" 며 묻던 창훈이 엄마가 내게 마을회관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오라 하셨다.


마을회관 옆 정자를 가니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술판을 벌이며 밥을 먹고 있엇다. 

동네잔치에 그들이 보기엔 탐탁치 않던 파란기왓집 사람을 초대한 것 이다.


가자마자 내게 아주 빨간 고깃국을 창훈이 엄마가 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당연히 누구나처럼 육개장인줄 알고 맛있게 먹었다. 


그 맛있던 고기가 나를 항상 물려했던 소원이네 집 개 란걸 알았다면 더 맛있었을까? 

소원이집의 이름없는 개 때문에 스무살 가까워질 동안 개를 무서워했던 내가 그 고기로 만든 보신탕을 맛있게 먹었다니 아이러니 하기가 이를데가 없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가끔 동네 사람들과 밭에가서 일을 도와주며 야채도 얻어오고 동네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도 화를 내지 않았다.


창훈이 엄마도 내게 너희 부모님은 어디에 있냐고 묻지 않았다.


또한 할머니는 항상 시내로 다니시던 교회를 그 동네 근처에 있는 시골교회로 옮기셨디.


그 보신탕 한 그릇으로 말이다.



누구나 밥을 먹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또한 보편적이다.


그래서 요즘 한끼줍쇼 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람들의 저넉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의 마을회관 옆 정자에선, 먹는 사람이 누구던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그래 아마도 그때의 밥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항상 아무 생각 없이 먹던 보신탕에 대한 단상을 적는 이유는

저번 주말 정말 뜻하지 않게 정성스레 포장해준 보신탕 덕분이다. 


누군가에게 그런 정성스래 집에서 준비한 귀한 음식을 내어준다는게 요즘 같은때에 흔한일이 아니기에 생각할수록 감사하기 이를데가 없다.


지나간 한끼는 다가오는 한끼 앞에선 무력하다.


하지만 그때의 그 한그릇의 보신탕처럼 나를 위해 준비하여준 이 한끼가 

무수히 다가오는 끼니의 행렬중에도 무력하지 않을것 같다. 그냥 있어서 준게 아닌 누군가를 위한 정성과 진심이라 생각하려 한다.


정성스레 나를 위해 아무라 지나가도 무력해지지 않는 지나간 한끼를 선물한 그분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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